주요 소장유물 소개 - 1945년 8월 15일, 조선땅에 다시 빛이 드리워진 그날
- 유물명 주요 소장유물 소개 - 1945년 8월 15일, 조선땅에 다시 빛이 드리워진 그날
- 등록자 유물관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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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서31971 대한민국초대내각사진 세로: 26.8cm 가로: 37.8cm
서34627 임시정부각원명단 세로: 25.6cm 가로: 30.5cm
서34615 임시정부당면정책안내문 세로: 25.7cm 가로: 35.3cm
서42413 임시정부혁명영수약력 세로: 18.1cm 가로: 12.6cm -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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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하였다.
각료에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다. 6월 11일 임시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승만을 임시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한편 내각을 개편하였다. 9월 6일에는 노령정부와 통합하고 제1차 개헌을 거쳐 대통령중심제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1926년 9월 임시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원제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의원내각제가 정부형태의 주류를 이루었다. 1945년 8·15광복까지 상하이(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 1937]·광저우[廣州,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1939]·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충칭시기(1940∼1945)에는 광복군을 창설하여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독일에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군대를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얀마·사이판·필리핀 등지에 파견하였다. 1944년에는 중국과 새로운 군사협정을 체결하고 독자적인 군사행동권을 얻었다. 1945년에는 국내진입작전의 일환으로 국내정진군 총지휘부를 설립하고 미군의 OSS부대와 합동작전으로 국내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진행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광복을 맞이하자 11월 29일 주요 간부들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고, 국내의 혼란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각과 정책이 계승되지 못하였으나, 임시정부의 지도이념인 자유주의 이념과 삼균주의(三均主義) 이념은 1948년 대한민국헌법에 반영되어 광복 한국의 기초이념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라고 하여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가 한국 독립의 모태가 되었음을 명시하였다.
서31971 대한민국초대내각사진(1960년대)
본 유물은 대한민국 초대내각 사진이다.
상단의 "대한민국초대내각"이라는 문구 좌우로 태극기와 봉황으로 장식이 있으며, 전체 테두리는 무궁화 무늬로 둘러져 있다.
총 15명의 인물을 3줄로 배열해 놓았다. 우선 상단의 가운데에 대통령 이승만이 있으며 그 좌측에는 무임소장관 이윤영, 부통령 이시영이 있다. 우측에는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 무임소장관 이청천이 있다.
두번째 줄에는 좌측부터 내무부장관 윤치영, 외무부장관 장택상, 재무부장관 김도연, 법무부장관 이인, 문교부장관 안호상이 있다.
세번째 줄에는 좌측부터 농림부장관 조봉암, 상공부장관 임영신, 사회부장관 전진한, 교통부장관 민희식, 체신부장관 윤석구가 있다.
하단 가운데에 있는 기록을 보면 서울시 중구 충무로 4가 109번지 사회사업 애린단사업부에서 발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34627 임시정부각원명단(1945년)
광복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단으로 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국무위원 이시영 등 12명, 각부 부장 7명, 참모총장 류동설, 정부 측 수원(隨員) 14명, 중국 동지 3명이 적혀 있다.
다른 한 장에는 의정원 의장 홍진(洪震)의 이름이 적혀 있다.
서34615 임시정부당면정책안내문(1945년)
본 유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면 정책 안내문이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3일자로 작성되었고, 김구 선생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일본이 9월 2일에 항서(降書:항복하는 뜻을 기록하여 적에게 보냄)에 서명을 하였고, 그 다음날 본 안내문이 만들어졌다.
내용은 크게, 건국에 관한 문제, 외교문제, 진일파 처단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 시점은 갑작스럽게 해방된 뒤 전국의 초기로 들어가는 과도적 단계로 독립국가, 민족정부, 균등사회를 원칙으로 건국을 준비한다고 정의하였다.
또한 중국,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5강대국과 우호협정을 맺고, 안전과 평화를 실현함에 있어 협조한다고 명시하였다.
안내문의 제목은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이라 되어 있다. 그리고 당면정책 14개조가 나열되어 있다.
서42413 임시정부혁명영수약력(1945년)
이 유물은 『임시정부혁명영수약력』이다. 1946년, 신한정의사(新韓正義社)에서 발행하였다.
이 책은 김구 주석 외 23명의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의 사진과 약력이 소개되어 있으며, 말미에 한국독립당무보고(韓國獨立黨務報告)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