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유물 소개

> 유물 > 소장유물정보 > 주요유물 소개

인쇄 공유하기

어느 때보다 강한 한파가 몰아친 올해 겨울, 커피숍마다 따뜻한 커피나 차로 꽁꽁 얼은 손과 몸을 녹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현대인들의 필수 음료가 된 커피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80년대 외국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이다. 각국 공사관이 조선에 설치되면서 체류 외국인을 위한 자국의 음식을 들여오고 그 과정에서 커피가 함께 유입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저자인 로웰은 그의 저서에 1884년 한강변 언덕의 빌라에서 한강의 정취를 감상하며 커피를 마신다는 내용을 남기고 있어 커피 보급 시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개항 직후 외국 공관과 호텔을 중심으로 시작된 커피의 유행은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만 보급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문헌 중 최초로 커피를 언급한 것은 1884년 3월 27일자 한성순보(漢城旬報)이며 이때 커피를 중국식 한자인 ‘咖啡(가배)’로 표기하였다. 이후 1908년 다방의 시원(始原)에 해당하는 일본식 ‘끽다점(喫茶店)’이 등장하고 한국인 박정애의 ‘부인다옥(婦人茶屋)’이 다방에 가까운 명칭을 사용하여 개점하면서 점차 다방이 친목의 장소로 애용되기 시작하였다.

1945년 광복시기와 1950년대의 6.25전쟁 시기를 지나 1961년 커피가 외화 낭비의 주범으로 지적되면서 수입커피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해 5월, 전국의 다방에서 일제히 ‘커피틑 안 팔겠다’는 의지가 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당시 커피 단속에 걸려 다방이 영업정지를 당하거나 마담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후 규제가 풀리면서 1960년대 다방은 사교생활의 장으로, 현대인들의 사랑방으로서의 필수 장소가 되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1969년 기준 서울의 다방 수만 205개, 종업원 수만 15,000여 명, 매일 다방을 찾는 사람은 백만 명이 되었고 좌석 수만 수백 개인 기업형 다방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전화기가 귀했던 시기인 만큼 전화를 놓은 다방은 상거래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때문에 다방 카운터에서 “김 사장님! 전화왔습니다”라고 소리치면 여러 명이 우르르 나와 확인해야 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였다.

한편 대학가에 자리한 다방들은 청년문화의 산실로서 역할을 하였다.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의 모임장소가 되기도 하고 음악감상실 등의 형태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당시 청년들의 해방구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 서울 혜화동의 ‘학림다방’, 신촌의 ‘독수리다방’이 그 명맥을 이어와 그 시절을 회상하는 유명 장소가 되었다.

 

 

만족도평가
서울역사박물관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