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유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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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 정치에서는 통치자가 백성을 다스리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군자(君子)의 자질을 갖춰야 함을 강조하였다. 강제적인 힘에 의해 다스리는 패도정치(覇道政治)와 대비되는, 덕망 있는 사람이 도덕적 교화를 통해서 어진 정치를 펼치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유교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정치였기 때문이다. 옛 통치자들은 군자의 자질, 즉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고자 노력했음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까. 농경 중심 사회였던 전통시대에는 농민의 생활 모습이 백성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따라서 통치자들은 고단하게 생업에 전념하는 농민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자신의 주변에 두고, 이를 통해 농사의 과정을 바로 알고 백성들의 삶의 애환에 공감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한편으로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삶과 본업에 충실한 백성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왕도정치의 이상이 실현된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는 이러한 의도를 담아 제작한 대표적인 궁중 회화라고 할 수 있다.

 

    빈풍칠월도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詩經)』의 「빈풍편(豳風篇)」 가운데 ‘칠월’ 시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빈풍편」은 주나라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빈(豳) 땅에서 유행한 노래 모음인데 이 가운데 ‘칠월’ 시에는 날씨의 변화, 농사짓기, 의복 마련하기, 집수리 등 농민이 생활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모두 8장으로 비록 계절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는 짜임새 있는 구성은 아니지만 각 장의 안에서는 대체로 달의 순서대로 읊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표 1].

 

[표 1] 빈풍 칠월 시의 구성과 내용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7월에는 심수(心宿)가 흐르니

9월에는 옷을 만들어 주네

11월에는 바람이 차갑고

12월에는 날씨가 춥다.

베옷이 없고 가죽옷이 없으면

어떻게 한해를 마치리?

1월에는 쟁기를 수리하고

2월에는 밭 갈러 간다.

우리 처자식과 함께
저 남쪽 밭을 갈러 가니
권농관이 와서 기뻐하는구나.

7월에는 심수(心宿)가 흐르니

9월에는 옷을 만들어 주네

봄날 따뜻한 날씨에

꾀꼬리 지저귀는구나.

처녀들은 광주리를 가지고서

오솔길을 따라가 어린 뽕을 딴다.

기나긴 봄날에

쑥을 많이도 캐는구나.

처녀들 마음이 아픈 것은

공자(公子)에게 시집가 부모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7월에는 심수(心宿)가 흐르니

8월에는 갈대를 벤다.

누에치는 달에 가지를 떨어뜨려 잎을 따니 도끼를 들고 가리라.

먼 가지는 베어버리고

작은 뽕나무는 잎만 딴다.

7월에는 때까치가 지저귀니

8월에는 길쌈을 한다.

검정, 노랑으로 물들이고

붉은 색이 매우 빛나니

공자의 옷을 만든다.

4월에는 애기풀이 열매 맺고

5월에는 매미가 운다.

8월에는 수확하고

10월에는 초목이 말라 떨어진다.

11월에는 여우와 승냥이 사냥을 가서 저 여우와 승냥이를 잡아 공자의 가죽옷을 만든다.

12월에는 모두 사냥을 가 무예 수련을 계속 익힌다.

어린 산돼지는 내가 가지고 큰 난 산돼지는 나라에 바친다.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5월에는 여치가 다리를 움직이고

6월에는 베짱이가 날개를 떤다.

7월에는 들에 있고

8월에는 처마 밑에 있고

9월에는 문에 있다.

10월에는 귀뚜라미가 침상 아래로 들어온다.

틈을 막고 쥐구멍에 불을 놓아 쥐가 나오도록 하며 북쪽으로 난 창문을 막고 창문을 바른다.

아! 우리 부녀자들아 한 해가 바뀌니 이 집에 들어와 살지어다.

6월에는 아가위와 머루를 먹고

7월에는 아욱과 콩을 삶는다.

8월에는 대추를 털고

10월에는 벼를 벤다.

술을 빚어 오래오래 사시라고 한다.

7월에는 오이를 먹고

8월에는 박을 타고

9월에는 참깨를 줍는다.

씀바귀를 캐고 가죽나무를 베어 우리 농부를 먹이리라.

9월에는 채마밭을 다지고

10월에는 벼를 거두어들인다.

벼에는 늦벼와 올벼가 있으며 벼, 참깨, 콩, 보리도 있다.

! 우리 농부들아 우리 가을 사를 이미 수확하였으니 읍내에 있는 집을 수리해야지

낮에는 띠를 베러 가고

에는 새끼 꼬아 빨리 지붕에 올라가 수리를 하자.

내년이면 백곡을 뿌리리라.

12월에는 얼음을 깨니 쿵쿵 소리가 난다.

1월에는 얼음 창고에 넣는다.

2월에는 이른 아침에 새끼 양을 올려 바치고 부추로 제사지낸다.

9월에는 서리 내리니

10월에는 마당을 깨끗이 쓴다.

두 동이의 술로 잔치를 열며 어린양을 잡는다.

저 임금의 마루 위로 올라가 술잔을 채워 올리고 만수무강하라고 하신다.

 

 

    왕도정치를 표방하였던 조선시대 왕실에서 빈풍칠월도는 꾸준히 제작되어, 세종대왕이 『시경』의 「빈풍편」을 모방해 우리나라 풍속을 바탕으로 한 빈풍칠월도를 제작하도록 집현전에 지시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궁중 화원을 선발하는 시험 문제로 「빈풍편」이 자주 출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 후기에는 빈풍칠월도 제작이 민간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여러 폭으로 이뤄진 병풍 형식을 빌려 ‘칠월’ 시 가운데 계절을 대표하는 소재를 선택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하여 배치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우리 박물관 소장 《빈풍칠월도》 병풍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박물관 소장 《빈풍칠월도》는 현재 6폭인 상태인데 도상이 유사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경직도》 8폭 병풍(덕수4176)과 비교해보면 봄의 장면을 그린 두 폭이 결실되었고 원래는 적어도 8폭 이상의 병풍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표 1]을 참조하여 각 폭에 묘사된 내용을 살펴보면 제1폭은 길쌈과 옷감 염색, 제2폭은 옷 만들기, 제5폭은 곡식의 수확, 제6폭은 겨울 사냥과 얼음 깨어 창고에 넣기, 염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고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계절이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해야 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빈풍칠월도》

   (제1폭) 제3장, 8월 길쌈・염색

   (제2폭) 제1・2장, 9월 옷 만들기

   (제3폭) 제5장, 10월 가옥수리

   (제4폭) 제6장, 8월 박타기

                      10월 봄 술 빚어 대접

   (제4폭) 제6장, 8월 대추털기

   (제5폭) 제7장, 9월 채마밭 다지기

                      10월 새끼 꼬아 지붕 임

   (제5폭) 제7장, 10월 곡식 수확

   (제6폭) 제8장, 10월 염소 잡아 잔치

   (제6폭) 제4장, 12월 사냥, 큰 짐승 나라에 바침

              제8장, 12월 얼음깨기


 

 

 

 

 

 

 

 

 

 

 

 

 

 

 

 

 

 

 

 

 

 

 

 

 

 

 

 

 

 

 

 

 

 

 

 

 

 

 

 

 

 

 

 

 

 

 

 

 

 

 

 

 

 

 

 

    한편 제2폭 화면 중앙에 표현되어 있는 농사하는 모습은 ‘칠월’ 시에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내용인데, 경직도(耕織圖)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경직도는 중국 남송(南宋) 때 항주(杭州) 현령이었던 누숙(樓璹, 1090~1162)이 고종황제에게 바치기 위하여 농사짓는 모습과 길쌈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 그림으로 일의 종류와 순서, 계절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이 역시 빈풍칠월도와 마찬가지로 통치자가 백성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좋은 정치를 펼치도록 하기 위해 제작된 감계화이다.

 

 (제2폭) 농사 장면

 《누숙경직도》 중 〈첫 번째 김매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덕수3894)

 

 

   이처럼 백성들의 생활모습을 담고 있는 빈풍칠월도는 조선시대 후기 풍속화의 성행과 함께 민간에서도 활발하게 제작되었고 도상이 민간으로 파급되는데 화본(畫本), 즉 밑그림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박물관 《빈풍칠월도》 제4폭과 현재 낱 폭으로 전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직도〉(덕수2287)를 비교해보면 S자 형태로 흐르는 시냇물을 활용해 공간을 구획하고 화면 하단에는 ‘술 빚어 대접하는 장면’, ‘박타는 장면’을, 중앙에는 ‘대추 터는 장면’을, 상단 왼편에는 우뚝 솟은 청록산수를 배치한 것에서 화면 구성 방식이 기본적으로 같음을 알 수 있다. 세부 표현에 있어서도 가옥의 구조, 인물들의 자세 등이 서로 닮아 있어 동일한 밑그림을 토대로 변형과 확산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빈풍칠월도》 중 제4폭

〈경직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2287)

 

《빈풍칠월도》 중 제4폭 세부
 

 〈경직도〉 세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2287)

 

 

 

 

 

 

 

 

 

 

 

 

 

 

 

 

 

 

 

 

《경직도》 8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덕수4176)

 

 

<작성자 : 정지인 학예연구사>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풍속화』, 2002.

김현지, 「조선 후반기 세시퐁속도 연구」, 『역사민속학』 제43호, 2012, pp.133-171.

김현지, 「조선시대 빈풍칠월도의 도상적 기원과 기능 연구」, 『미술사학연구』, 제295호, 2017, pp. 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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