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오소포닉 빅트롤라 축음기
- 유물명 빅터 오소포닉 빅트롤라 축음기
- 등록자 유물관리과
- 유물정보 서45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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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아 상설전시실 개편을 마치고 2022년 6월 30일 재개관하였다. 10년 만의 새 단장으로 그동안 새롭게 수집한 유물들을 대거 선보이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설전시실 3존 ‘1920~30년대 경성의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에는 고풍스러운 〈빅터 오소포닉 빅트롤라 축음기〉(Victor Orthophonic Victrola, 서45847)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일제강점기는 분명 암울한 시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양의 문물을 백화점이나 카페, 다방, 극장과 같은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중문화, 소비문화가 등장하고 확산하던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대중문화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면서 큰 영향을 끼쳤던 분야를 꼽으라고 한다면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 대중들이 음악을 폭넓게 즐길 수 있도록 매개체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축음기였다. 축음기의 등장으로 음악 분야에서 대량 생산과 소비의 체제가 만들어졌고 이후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음악은 대중적으로 소비될 수 있었다.
1920~30년대 경성의 일상에서도 음악이 함께하였다. 서양의 고전음악을 근대인이 갖춰야 할 필수 교양이라 생각했던 경성 사람들은 음악회를 찾았고 경성의 상점과 카페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레코드와 활동사진’에서 보고 들은 재즈 음악을 즐기며 ‘딴스’를 추었다. 개벽사에서 ‘대중의 취미 진작’을 위해 만든 잡지 『별건곤』에는 1920년대 후반 서양 고전음악과 재즈 음악의 유행 풍조에 대한 흥미로운 글들이 실려 있어 당시 도시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비록 글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있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음악이 일상의 영역에 얼마나 깊숙하게 자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소위 남녀 중학생 아이들까지 겨드랑이에 바이올린을 끼고 다니고 부자, 연인을 졸라서 제 집에다 피아노를 사 놓고 무엇이 무엇인지 뭣도 모르며 뚱땅거리고 앉아있는 모양
기암, 「현대남녀음악가에게 여(與)하노라」, 『별건곤』, 1927년 3월
빠른 속도 문명의 부산물, 현대인의 병적 향락생활 그것이 곧 재즈 취미라는 것이다. 흥에 겨운 곡조를 체통도 염치도 잊어가면서 몸짓, 손짓, 다리짓, 콧짓 그야말로 제멋이 내키는 대로 지랄을 하다시피 아뢰 오는 것을 재즈밴드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재즈 취미의 원천은 이 재즈밴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 대경성에도 이 세기말적 어깨 바람나는 분위기에 젖게 된 것은 눈에 보이는 사실이다.
이서구, 「서울맛 서울 정조 – 경성의 재즈」, 『별건곤』, 1929년 9월
『별건곤』 제4권 제6호(1929년 9월 간행, 서54187)
우리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되고 있는 〈빅터 오소포닉 빅트롤라 축음기〉는 미국 빅터사(Victor Talking Machine Company)의 일본법인으로 1927년 설립된 일본빅터축음기주식회사(日本ビクター蓄音機株式会社)에서 제작, 판매한 제품으로 보인다. ‘빅트롤라(Victrola)’는 1906년 소리를 확대하는 나팔 부분을 나무 캐비닛 안으로 숨긴 내장형 축음기의 상품명이며, ‘오소포닉(Orthophonic, 원음에 충실한)’은 1920년대 중반부터 생산이 시작된 전기녹음 음반을 재생하기 위해 개발한 축음기에 붙인 상품명이다. 따라서 ‘빅터 오소포닉 빅트롤라’가 상품명과 그 외양적 특징을 통해 ‘전기 녹음 음반 재생용 내장형 나팔 축음기’임을 알 수 있다.
〈빅터 오소포닉 빅트롤라 축음기〉(Victor Orthophonic Victrola, 1927년 이후, 서45847)
내부에는 20세기 초 가장 유명한 상표 중 하나로 꼽히는 빅터사의 ‘His Master’s Voice‘ 상표가 부착되어 있다. 이 상표는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바로(Francis Barraud)가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 Nipper가 축음기 앞에 앉아있는 모습 그린 작품에서 비롯하였다. 오른쪽에 태엽을 감아 사용하였다.
대게 축음기라고 하면 커다란 나팔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팔형 축음기는 큰 부피 때문에 이것이 놓일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였고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내장형 나팔 축음기이다. 축음기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특히 빅터사의 ‘빅트롤라’는 오늘날까지도 영미권에서 축음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사용될 만큼 오랫동안 다양한 모델이 만들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빅트롤라는 1920~30년대 경성의 가정집 거실, 혹은 식당, 카페의 한 켠에도 놓여 있었을 것이다.
빅트롤라와 같은 내장형 나팔 축음기, 그리고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며 소리를 내는 원반형 음반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형태이지만 축음기와 음반이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장치, 축음기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에 앞서 1857년 레옹 스코트(Leon Scott, 1817~1879)가 소리를 기록하는 기기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를 발명하였고 1877년 4월에는 샤를 크로스(Charles Cros, 1842~1888)가 소리의 기록은 물론 재생까지 가능한 기기 ‘펠리어폰(Paleophone)’을 고안하였지만 제품화되지는 못하였다. 결국 1877년 11월, 에디슨이 축음기에 관한 특허를 신청하고 ‘포노그래프(Phonograph)’라고 이름 지으며 축음기의 최초 발명가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 포노그래프(Phonograph) : 목소리(Phone) + 글씨(Grapho) 결합어



좌) 〈에디슨 스탠다드 축음기 모델 C〉 (Edison Standard Phonograph model C, 1898년 이후, 서51835)
에디슨은 1896년부터 가정용 태엽 모터 축음기인 ‘홈 모델 축음기(Home Model Phonograph)’를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1898년에는 더 단순한 형태의
‘스탠다드 축음기(Standard Phonograph)’를 선보여서 많은 대중이 쉽게 축음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 〈에디슨 원통형 음반 no.8264〉 (Edison Gold-Moulded Cylinders, 1902~1912, 서51836)
다만 에디슨은 축음기를 ‘속기사 없이 사람의 말을 받아쓰는 기계’ 등의 사무용 기기 정도로 생각하였을 뿐 음악의 녹음과 재생을 위한 수단으로 보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고, 1890년대 후반에 와서야 음악을 재생하는 대중화된 축음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에디슨 스탠다드 축음기 모델 C〉(서51835)는 이 시기 만들어진 초기 축음기 형태로 나팔이 장착되어 있고 〈에디슨 원통형 음반〉(서51836)과 같은 원통형 음반을 회전시켜 소리를 재생하는 방식이었다.
원통형과 앞서 본 빅트롤라와 같은 원반형 음반을 재생하는 축음기를 비교해보면 원통형이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능이 더 우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와 같은 원통형 음반과 이를 재생하는 축음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원반형 음반이 대량 생산에 더 적합하여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29년 8월, 에디슨사가 원통형 음반과 축음기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면서 이것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작성자 : 정지인 학예연구사>
[참고자료]
김토일, 『소리의 문화사, 축음기에서 MP3까지』, 살림, 2005.
국립중앙과학관 - 축음기(http://www.scienc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