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상회 영업목록
- 유물명 계림상회 영업목록
- 등록자 유물관리과
- 유물정보 서 36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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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족자본 상점의 영업기록
계림상회 영업목록 鷄林商會營業目錄
조선시대 한양에 운종가라고 불리며 상업 거리로 조성되었던
종로는 일제강점기 일본 상업자본의 침투 속에서도 우리 민족자본의 상점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계림상회 영업목록> 표지 ► (좌) 계림상회 영업 및 상품 주문 방법에 관한 안내
(우) 계림상회 각 부서 직원 소개
민족 상권의 변화
20세기 초 일본은 대중 소비 사회로 들어서게 되었고 여러 가지 상품을 부문별로 진열, 판매하는 백화점이라는 대규모 종합 상점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는 곧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1920년대 충무로에는 미츠코시三井, 조지야丁子屋, 미나카이三中井 등 일본 백화점이 연이어 들어서 백화점 거리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일본 대형 상점들과 경쟁이 불가피했던 종로의 민족 상권에도 백화점의 경영방식을 도입한 상점들이 생겨났다. 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붙여 첫 번째로 개장한 상점은 도자기와 철물류를 취급하는 잡화전문점이었다. 1916년 김윤배金潤培가 종로 2가에 설립한 김윤백화점이 그것이다. 이후 최남崔楠은 1919년 양품 잡화와 금은 세공품, 시계, 안경, 수예품 등을 취급하는 여성 전용 백화점인 동아부인상회東亞婦人商會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상점들은 비록 규모는 영세하였지만 점차 근대적인 경영방식을 채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계림상회 영업목록鷄林商會 營業目錄〉을 발행한 계림상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림상회는 1918년 유재선劉在善이 종로 2가에서 설립한 상점으로 남녀혼례 용품과 비단, 포목, 금은 세공품, 양산洋傘, 교자轎子, 문장蚊帳-모기장, 축음기蓄音器 등을 판매하였다. 충정로에 일본 백화점들이 설립되던 시기 와 맞물려 1926년에는 합명회사로 바꾸고 영업 부분을 새롭게 확장해 백화점식 잡화점으로 기반을 다지게 된다. 즉 ‘남녀 혼인 물품 전문부男女婚具品專門部’, ‘비단 · 포목 · 서양 피륙 상품부綢緞布木洋屬部’, ‘털가죽 및 모기장부毛物蚊帳部’, ‘금은 장신구 제조부銀首飾佩物製造部’로 부서를 분리, 확장하고 경성 외에 전국의 고객을 대상으로 통신판매를 한다는 영업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도 상품을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도록 각 상품의 견본, 크기, 가격을 자세하게 기재한 카탈로그를 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계림상회 영업목록〉이다.
► 계림상회 판매 상품 안내
〈계림상회 영업목록〉은 상표와 상점의 외부 전경, 주소와 연락처를 먼저 안내한 후 판매, 통신, 회계, 수출입 각 부서의 책임자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삼가 아뢰옵니다謹啓時下’로 시작하여 이러한 영업목록을 만들게 된 배경과 활용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혼례 용품, 포목, 피혁, 가구, 축음기 등의 순서로 판매 상품을 안내하고 있다. 영업목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계림상회의 몇 가지 영업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완제품 외에도 상품의 재료를 유럽과 중국, 일본 등에서 직수입하거나 전국 산지에서 공급받아 상품을 직접 생산, 판매함으로서 중간 유통 과정을 줄이고 소비자들이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해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적인 영업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신판매부터 포인트 적립까지
또한 계림상회는 다양한 고객층을 끌어들이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최상급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한 특품에서부터 상품, 중품, 차품 등 상품의 품질에 등급을 나누고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여 부유한 계층에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형편에 맞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혔다. 예를 들어 혼례 물품 중 관복冠服, 각대角帶, 사모紗帽 목화木靴 등을 한 세트로 판매하는 남성 관복의 경우 특별품은 일본에서 수입한 광택이 나는 질 좋은 비단인 하부단河夫緞으로 제작하고 각대는 동물의 뼈를, 목화는 검은 우단黑羽緞, 즉 벨벳을 사용하였다. 반면 가장 저렴한 차품의 관복은 얇고 성기게 짠 비단인 갑사甲紗로 만들어 가격을 특별품에서 차품까지 42원~18원으로 폭넓게 책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남성 관복의 구성 및 가격 안내
※ 1원 = 약12,635원 (1923년 기준,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아울러 계림상회는 상품 판매망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통신판매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 영업목록을 전국의 각 구區, 리里, 정町, 동洞의 대표에게 발송하고 상품의 종류와 수량에 상관없이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전국의 고객들이 영업목록에서 상품을 선택하여 주문하면 계림상회에서는 우편으로 배송해주고, 고객들은 우체국에서 상품을 찾아가면서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대금인환代金引換’이라고 한다.
지금의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특히 상품을 확인한 후에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지방의 고객들은 비교적 안심하고 상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영업목록의 뒤표지에는 송금 수수료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통신판매 운영에 있어서 영업목록은 실제 상품을 보지 않고 주문해야 하는 고객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하고 필수적인 자료인 것이다. 따라서 계림상회에서는 삽화를 통해 상품의 상세한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더욱 신경을 써서 특별히 동양화가 우석 김기창愚石 金基昌筆에게 의뢰하였다. 상점의 전경과 혼례 복식을 착용한 신랑, 신부의 모습을 그린 이미지에는 화가의 서명이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우석 김기창이 그린 영업목록 삽화
계림상회는 지금으로 말하면 포인트 적립과 경품 행사를 통해 소비를 촉진시키는 영업 방식도 도입하였다. 계림상회는 영업목록을 전국 마을 대표에게 발송하면서 이들을 통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각 마을 대표를 거쳐 상품을 주문할 경우 주문 금액의 2%를 현금이나 물품으로 마을 대표에게 보상하였다. 이는 현재 우리가 물건을 살 때 적립한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하는 방식과도 동일하다. 또한 1년 동안 주문 금액이 많은 고객을 선정하여 상금이나 은으로 만든 기념품을 주는 행사도 진행하였다.
1등 1명 보상금 1,000원
2등 2명 보상금 500원
3등 19명 보상금 100원
4등 100명 순은제 계림상회 기념잔 한 세트
당시 눈부신 조명에 신식 인테리어 매장을 갖추고 가격 태그가 붙은 정찰제 상품들로 고객을 유인했던 이른바 남촌의 일본 대형 상점들의 물량 공세는, 조선 개국 이후 수백 년간 상인과 손님 사이에 에누리, 덤 같은 흥정으로 시끌벅적했던 종로 거리의 상점에게는 엄청난 횡포와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계림상회 영업목록〉은 일제강점기 백화점을 표방한 종로의 상점인 계림상회에서 판매했던 물품의 종류와 가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상품 가격의 다양화, 통신판매, 구매 포인트 적립 등 그들이 세웠던 판매 전략이 지금과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는 점에서 일본 식민자본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북촌 상업계의 변화 노력을 읽을 수 있는 자료이다.
(작성자 : 정지인 학예연구사)